환상의 무게
필리핀의 비극이 네옴시티, 테슬라, 오픈AI의 거짓말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서론: 현실의 무게
태풍 칼매기(현지명 티노)가 필리핀을 강타해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세부 지역에는 하루 동안 183mm의 비가 쏟아졌는데, 이는 11월 한 달 전체 강수량보다 많은 양이었다. 이 재난의 심각성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전문가 벤 파올로 발렌수엘라는 필리핀이 "10여 년 전부터 울린 재난 대비 경보의 스누즈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문제의 핵심에는 부패가 자리 잡고 있다.
세부 주지사는 260억 필리핀 페소(약 4억 4천만 달러)에 달하는 홍수 통제 프로젝트 예산이 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심각한 홍수 피해가 발생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것이 바로 현실의 무게다.
그런데 지구의 다른 곳에서는 그 현실을 외면하는 거대한 거짓말들이 진행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는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미래 도시를 약속하고, 테슬라는 한 개인의 리더십에 천문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오픈AI는 인류의 미래를 걸고 막대한 베팅을 하고 있다. 이들의 거대한 담론은 필리핀의 홍수처럼 시급하고 절박한 현실의 문제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이 글은 필리핀의 비극을 통해 이 거대 담론들이 지닌 '무게'와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비현실적인 꿈이 아니라 그 꿈을 좇는 과정에서 어떤 현실이 외면당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어질 수 없는 도시: 현실과 충돌한 네옴(Neom)의 꿈
물리학의 법칙과 경제성의 현실이 만난 지점에서
네옴시티의 핵심 프로젝트 '더 라인'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비전을 제시했다. 길이 170km, 높이 500m에 달하는 거대한 거울 도시, 자동차 없는 친환경 도시, 사막을 파서 만든 '숨겨진 마리나', 그리고 그 위로 공중에 매달린 30층짜리 건물까지. 이 비전은 마치 건축의 범주를 벗어난 장대한 꿈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꿈은 곧 현실의 법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1) 물리학의 반발
건축가들은 아치에서 거꾸로 매달린 건물이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진자처럼 흔들리다 결국 부서져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자연적인 해류가 없는 인공 마리나는 물이 고여 심각한 위생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의 비현실성은 한 일화에 집약되어 있다. 한 건축가가 거꾸로 매달린 건물에서 하수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자, 프로젝트 책임자는 "수백 대의 셔틀 차량이 개폐식 다리를 오가며 하수를 수거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설계 결함이 아니었다. 이는 기본적인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그것을 "기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행태였다.
2) 경제성의 붕괴
초기 예산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내부 추정 예산: $4.5조
독일의 연간 경제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
전 세계 녹색 철강 생산량의 60%를 소모해야 했고, 초기 20개 모듈에 필요한 시멘트 양만 해도 프랑스의 연간 생산량을 초과했다. 엄청난 자재 소요량은 비용을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밀어 올렸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계의 자재 생산 체계 자체를 움직이려 했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했다: 가격 폭증.
3) 실행의 절망
원래 20개의 모듈로 계획되었던 1단계 프로젝트는 3개 모듈로 대폭 축소되었다.
결과: 이 결정으로 인해 이미 수십억 달러를 들여 설치한 6,000개의 거대한 기초 말뚝은 순식간에 쓸모없는 고철 더미가 될 위기에 처했다.
수십억 달러는 그냥 사라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박혀있는 6,000개의 거대한 기초 말뚝만 남겼을 뿐.
4) 조직 문화의 붕괴
더 큰 문제는 프로젝트 내부의 조직 문화였다. 전 직원들은 반대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고 지도부에게 우려가 전달되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분위기였다고 증언한다.
한 직원은 "사실상 프로젝트 기간과 비용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화는 우연한 결함이 아니었다. 이는 동료 심사나 시장 현실이 아닌 단 한 명의 독재적 후원자의 비전에만 의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결국 네옴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비전, 즉 '물리적 가능성에 대한 거짓말'이었다. 이는 단순한 설계 결함이 아니었다.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자원을 집어삼키며, 의도적인 무지를 기반으로 세워진 수조 달러짜리 환상이었다.
8조 5천억 달러의 약속: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건 테슬라
기업의 미래를 한 개인의 초인성에 종속시키는 위험
테슬라 주주들은 일론 머스크에게 거대한 규모의 신규 보상안을 승인했다. 이 보상안은 과거 법원에서 과도하다고 판결한 560억 달러 규모의 이전 계약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 목표 | 현재 대비 | 난이도 |
|---|---|---|
| 시가총액 | 6배 증가 (→ $8.5조) | 🔴 매우 높음 |
| 순이익 | 24배 증가 (→ $400억) | 🔴 거의 불가능 |
| 로봇 판매 | 수백만 대 | 🔴 기술 미확보 |
| 자율주행 구독 | 수백만 건 | 🔴 아직 미완성 |
이 비현실적인 보상안이 정당화되는 논리
머스크는 AI와 로봇공학으로 "세계 경제를 10배 또는 100배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사회는 다음과 같이 강변했다:
"머스크 없이는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 세계 최고 부자에게 초인적인 노력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이 거액의 보상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회사는 공포를 판다. "그 사람이 떠나면 우리는 끝난다"는 불안감을 기반으로 천문학적 보상을 정당화한다.
비판의 목소리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테슬라 7대 주주): "핵심 인물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반대표 투표
이들의 우려는 명확했다: 이는 기업의 미래를 견실한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초인적인 인물에 대한 신화와 그의 환상적인 약속에 의존하게 만드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진짜 문제: 대체 불가능성의 신화
이것은 '대체 불가능한 개인에 대한 거짓말'이다. 기업의 운명을 견실한 펀더멘털이 아닌, 단 한 명의 구원자라는 신화에 옭아매어 전례 없는 보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서사다.
만약 그 개인이 정말로 회사에 그토록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면, 그것은 회사의 경영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묻혀진다. 그 대신 "그를 붙잡기 위해서는 어떤 값도 치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만 전파된다.
'실패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AI: 오픈AI의 숨겨진 청구서
혁신의 이름으로 사회에 전가되는 위험
챗GPT의 개발사 오픈AI는 향후 8년간 컴퓨팅 파워와 장비에 무려 1조 4천억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현재 많은 나라의 국방 예산보다 큰 규모다.
하지만 이 거대한 베팅의 이면에는 위태로운 재정 상태가 있다.
오픈AI는 지난 분기에만 약 12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모순된 신호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픈AI 경영진은 모순된 발언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CFO 사라 프라이어: 자금 조달을 위해 정부의 "안전장치, 즉 보증"이 필요할 수 있다고 시사
반나절 뒤, CEO 샘 알트먼: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정부 보증을 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망하면 실패해야 한다"고 선을 그음
이 두 발언은 모순되지 않는가? 아니다. 이것은 신중하게 계산된 이중 메시지다.
한편으로는 정부 보증이 "필요할 수 있다"고 시사하여 정책 입안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정부 보증을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여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지키려 한다. 둘 다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회사는 이미 그렇게 크기 때문이다.
연쇄 붕괴의 위험
분석가들은 오픈AI의 거대한 베팅이 실패할 경우, 그 충격이 단순한 투자 손실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연쇄적 위험: 엔비디아, AMD, 오라클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의 운명이 오픈AI의 재정과 묶여 있는 '순환적 금융 조건' 때문에, 한 스타트업의 실패가 미국 주식 시장 전체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경우, 누가 청구서를 받게 될까? 결국 그 부담은 납세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혁신의 탈을 쓴 위험의 전가
오픈AI의 행보는 막대한 기술적 베팅이 야기할 수 있는 시스템적 위험이나 공적 구제금융의 가능성을 애써 외면한 채 혁신을 부르짖는 행태다.
이것은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혁신에 대한 거짓말'이며, 그 청구서는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될지 모른다. 이는 현실의 위험을 외면한 채 미래에 대한 공허한 약속으로 자원을 독점하는 또 다른 형태의 환상이다.
결론: 거짓말의 무게와 필리핀의 현실
네옴이 물리학을 거스르는 도시를 꿈꾸고, 테슬라가 8조 5천억 달러의 미래를 약속하며, 오픈AI가 1조 4천억 달러를 베팅하는 동안, 필리핀에서는 부실한 인프라와 만연한 부패로 인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버나드 앨런 라코마 교수: "권력자들이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강탈하기 때문에 재난이 악화된다"
그의 말처럼, 문제는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원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의 진짜 무게
이 거대한 '거짓말들'의 진짜 무게는 프로젝트의 실패나 금전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진짜 무게는 바로 '기회비용'이다.
필리핀의 사례에서 보듯, 다음과 같은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자본과 관심, 그리고 인재가 실현 불가능한 환상을 좇는 데 낭비되고 있다:
- 기후 변화 적응 - 태풍의 강도는 증가하고 있다
- 지속 가능한 인프라 구축 - 260억 페소의 예산이 있어도 홍수를 막지 못한다
- 부패 방지 및 투명성 -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구조를 개혁하는 것
마지막 질문
네옴의 파일은 사막에 박혀 있다. 테슬라의 목표는 달성되지 않을 것 같다. 오픈AI의 투자는 회수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필리핀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죽는다.
이것이 바로 환상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자본의 낭비가 아니라, 미래의 기회 상실이며, 현재의 삶의 상실이다.
"오늘을 그리다"는 것은 이러한 무게를 기록하고, 인지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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